토지갈등

1984~2004

1984

닛산차체, 우토로 허창구에게 토지매각 제안

문제의 인물 히라야마 마스오. 본명 허창구. 우토로 주민. 1998년 교토지방재판소의 판결문에는 허 씨를 '자치회장'이라고 표시하고 있지만, 그는 의사결정권이 있는 존재가 아니었음

1985-03-15

우지시 방화사건에 의한 우토로 화재

4채가 전소

1985

'지문날인문제를 생각하는 우지시민모임' 발족

1986-04

국민건강보험법시행규제 개정, 국적조건 폐지

1986-06-07

일본시민들, <우토로지구에 수도시설을 요망하는 모임> 결성

일본인들 결합 시작. 서명운동을 전개. 쵸나이에서는 '우토로지구에 수도부설을 요망하는 동향회' 발족

1986-08-01

주민대표와 시민모임이 총 5천 4명의 서명을 모아 우지시에 요망

1986-12

닛산차체, 우지시를 경유하여 교토부에 『국토법』 신청서류 신고

1987-02-18

카구라다홀에서 '우토로수도문제를 생각하는 시민' 심포지엄 개최

4월 6일, 히로노쵸 조선신용조합 우지지점회의실

1987-03

㈜닛산차체가 우토로 토지 부동산업자에 매각

매매 가격은 3억 엔. 같은 날 닛산차체가 수도매설 동의서를 우지시에 제출. 주거권 문제로 발전, 강제 퇴거 위기의 시작

1987-04-30

당시 교토민단 단장 하병욱, 부동산회사 서일본식산 설립

판결문에 따르면 닛산차체로부터 매입 제의를 받은 허창구는 자금 문제로 고민을 하게 되고, 하병욱에게 자문을 구함. 하병욱은 매입 자금을 빌리기 위해 서일본식산이라는 부동산 회사를 설립

1987-05-09

허창구, 서일본식산에 토지 매각 계약

매매 가격은 4억5천만엔. 이 과정에서 허창구는 1억4500만엔의 이득을 챙김

1987-05

허창구, 서일본식산 이사로 취임

1987-08-02

우토로 토지 소유권, 닛산에서 서일본식산으로 이전 등기

1987-11

KAL기 폭파사건

1988-01~1988-03

우토로에 수도 시설 공사

4월부터 급수 개시

1988-03

우지시직원채용시험에서 국적조항 일부 철폐

1988-05-31

우지시민모임에서 시에 지문날인, 외국인등록증 상시휴대 폐지를 요청

1988-06

철거업자의 잦은 왕래로 주민들 매각 사실 알게 됨

수도 공사 후에야 우토로 주민들은 토지가 전매된 사실을 알게 됨. 모든 일을 주도했던 허창구는 매입 사실이 들통나자 가족들과 함께 야반도주

1988-06

주민들, <우토로 주민회> 재건 및 <우토로토지대책위원회> 결성

1988-09

교토민단 단장 하병욱, 일본인에게 서일본식산 매각

1988-09

서울올림픽 개최

1988-10-06

주민회, 토지대책위원회장 등 주민대표가 기자회견

1988-10-23

제1회, '우토로마을 만들기 집회' 개최에 400명이 참가

1988-12-13

서일본식산에서 주민 78세대에 대해 퇴거통보 우송

1988-12-24

주민회, 토지대책위원회, 사회당 우지시의회와 함께 우지시에 요청

1989-02-02

서일본식산, ‘건물수거, 토지명도’ 소송 제기

서일본식산이 토지명도와 건물철거를 요구하며 교토지방재판소에 제1차 제소

1989-02-13

재개발업자가 우토로에 옴, 주민저지. 서일본식산이 10월 17일에 해체공사에 들어간다고 통보

1989-03-02

'우토로문제를 생각하는 집회' 개최

1989-03-10

「우토로 뉴스」 1호 발행

1989-03-15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 준비회, 이하 사무국회의 개최

1989-03-22

일본시민들, <토지명도 반대!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 결성

“우토로문제의 역사적 원인은 일본의 조선 침략, 식민지 지배다. 일본정부는 재일한국·조선인 주민에게 전후책임을 완수해야 한다. 닛산차체는 기업으로서 책임이 있다. 원고로부터 토지를 되사들여 원상회복시키고 주민과 교섭해 자주적,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여야 한다” 모임은 30년이 지난 현재까지 지속. 우토로 주민들의 거주권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음

1989-03-29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 사무국회의 '거리선전 전단지' 발행

1989-03

교토지법에서 첫 공판

1989-04-17

우토로토지대책위원회, 주민회, 민단지부, 총련지부, 교토부 지사에게 ‘국토법 위반’ 등을 지적하고 철회를 요구하는 합동 요청서 제출

교토부에 항의방문, 약 200명이 참가

1989-04-29

제1회 '땅투기반대! 우토로집회-분노의 퍼레이드 닛산으로'. 약 700명이 닛산차체교토공장 주변을 퍼레이드

1989-05-09

「우토로뉴스」 2호 발행

1989-05-27

제1회 학습회 '우토로의 역사' 츠쿠바대학·센모토조교수

1989-07-05

지키는모임에 참가하는 학자·문화인들이 우토로를 지키기 위해 공동성명 발표

제7회 재판 종료 후, 변호사회관 3층 회의실에서

1989-10-01

전체회의에서 닛산차체와 닛산자동차에 공개질문장 송부를 결정, 다음날 제출

1989-11-05

제2회 '우토로 마을만들기 집회' 개최

참가자 700명이 닛산차체까지 데모진행

1989-11-20

우토로 동포들과 지원자들, 닛산차체와 닛산자동차 본사에 항의 행동

1989-11

11월 리플렛 '이 땅에 산다' 발간

1989-11-28

우토로문제가 전국 주간지에 게재됨(플레이보이)

1989-12-03

가을축제 교토89(교토시 사쿄구 오카자키근업관에서 개최)에 실행위원단체의 하나로 참가 및 사진 전시 '우토로는 지금-380명·우아한 투쟁'

1990-04-18

마이니치테레비에서 다큐멘터리 '우토로 90·거울' 방영

1990-04-26

우토로를지키는모임 대표 다카와씨 일독평화포럼에서 강연 및 폴스바겐자동차공장평의회 방문(서독 커셀시) 위해 방독

1990-04-29

제2회 '우토로집회' 개최

신야 에이코씨 1인극, 마당에 불고기가 처음으로 등장 등

1990-05-26

다카와씨 귀국 보고

1990-06-04

사회당국회의원단 우토로 조사

시마사키 유즈루(조선문제대책위원회 사무국장)외. 거주권과 생존권 침해상황이라고 결론. 6월 20일, 중의원법무위원회에서 일반질문

1990-07-31

'피스 사이클 9년'이 우토로 격려방문, 주민과 교류하고 닛산차체에 항의방문

1990-08-12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 ‘전후보상 국제포럼 in 우토로’ 집회 주최

1990-11-03

제3회 '우토로 마을만들기 집회' 개최

가하라어린이회보호자회장 나카무라 츠토무씨 강연

1990-11-16

'조선식민지지배사죄·청산과 새로운 북일·일한관계를 요구하는 국민서명운동' 집회

1990-12-09

'가을축제 교코90'에 오가와씨 사진 전시, 우토로 농악대 등 참가

1990

<한겨레신문> 우토로 보도

한국 최초 보도

1991-01-10

도쿄지방재판소에서 일본정부에 소송 중인 한국인 전 군인과 그 유족 22명이 우토로 방문

1991-01-09~1991-01-10

한일외무장관회담에 의한 '한일법적지위협정에 근거한 협의 결과에 관한 각서' 체결, 특별영주권과 그 대상자에 대한 지문날인제도폐지를 약속

1991-02-24

오가와쇼헤이씨 사진전 '궁지' 지역에서 개최

1991-03-10

'제6회 당신이 만드는 여성 페스티벌' 심포지엄에 우토로부인회 참가

1991-03

다가와씨 우지시의회에 사회당 추천으로 출마

1991-03

노동성, 강제연행자 9만 8404명 명부를 한국에 제출

1991

주민들, 닛산자동차 본사 및 수상관저에 각각 요망서와 진정서

1991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 독일과 미국 등 방문 호소

1991-04-27

평화교류단 5명 독일 파견, 강혜정씨가 우토로 주민 메시지를 받아서 참가

1991-04-28

제3회 '우토로집회' 개최

300명 정도가 참가해 닛산차체 주변을 포위 퍼레이드

1991-08-24

니시고쿠라메구미 연수센터에서 '제5회 메구미 학교'를 우토로에서 실시

1991-09-06

이유미씨, 미국 동해안에서 어필하기 전에 기자회견(9월7일 출발)

1991-10-20

제4회 '우토로 마을만들기 집회'에 150명 참가

사회당 야마나카 중의원의원, 아시아·태평양지역전후보상국제포럼 실행위원장인 변호사 다카기켄이치씨 강연

1991-10-24

이데쵸이즈미부인교실 20명 우토로 방문, 우토로부인회와 교류

1991-11-03

쵸내 어린이들을 주요 대상으로 '우토로문고'를 개시

1991-11-11

사회당강제연행문제대책위원회 우토로조사단 의원이 현지 조사 및 우지 시청 방문

1991-11-15

교토지방재판소에서 화해안 제시. 주민은 일괄 매입 주장, 원고측 응함

1991-11-22

한국일보와 경향신문이 처음으로 우토로 문제 보도

1991-12-10

제2회 화해교섭

1991-12

한국인 여성으로 일본군 '위안부'였던 35명이 일본 정부에 1명당 2000만엔 보상을 요구하며 교토지방재판소에 제소

1992

제1차 화해교섭 결렬 (교토지법)

1992-01-23

제3회 화해교섭

1992-02-03

이유미씨 우지시청에서 귀국보고집회

1992-02-06

제4회 화해교섭

1992-02-07

이유미씨 우토로 주민에게 보고집회

예일대학에서 강연, NY미일인권차별철폐협회, 유엔인권위원회 담당자, 전미부인협회 롱아일랜드 지부에서의 호소 등을 보고

1992-03-04

제5회 화해교섭

1992-03-15

대책위원회를 해산하고 주민회로 통합, 김교일 회장 취임

1992-03-22

'제6회 이데쵸해산문화제'에 우토로 부인회 농악대 참가

1992-04-16

제7회 화해교섭

재판소가 19억 2천만엔 타협안 제시

1992-04-26

제4회 '우토로집회' 개최

약 300명 참가. 우토로농악대도 연주. 주민 여성이 '우리는 앞으로도 고향 우토로에 계속 살겠다'는 결의 밝힘

1992-06-01

제9회 화해교섭, 불성립으로 종료

1992-06-01

외국인등록법개정 시행(지문날인제도 폐지 등)

1992-06-13

문동기씨 서거

1992-08-09

뉴욕 타임즈에 의견광고 운동 성공에 대한 지역집회

극단 하구루마 <우토로·어머니의 증언> 공연

1992-08-13

'일독평화포럼' 초청으로 독일청년들이 우토로 방문

1992-10-07

'우토로를 지키자! 농악과 연극의 밤' 교토회관 제2홀에서 개최

우토로 농악대와 재일연극 <파란세> 공연

1993-02-08

외국인기자클럽(도쿄도 유락쵸)에서 기자회견. '우토로에 살다' 슬라이드 송부

1993-03-01

<뉴욕타임즈>에 의견광고 게재

「Why does Nissan want to destroy our homes?」

1993-04-16

우토로 특집 방송

'PD수첩'에서 우토로 문제 취재 '일본 우토로 동포들의 수난'(※1997년 재방송)

1993-06-02

라쿠난타임즈에 뉴욕타임즈지 광고 번역 게재

1993-06-06

제5회 '우토로집회'

1993-08-12

'일독평화포럼'에서 교류한 독일인 활동가가 우토로와 우지시청 방문

1993-09-13

재미코리언시민운동가의 요청으로 다카와씨, 김소도씨, 츠루오카 메구미씨 LA로 출발

9월 28일, 우토로대표단 귀국보고

1993-09-30

우지고교학원제연극에서 토지문제를 담은 창작극 '동부-우정의 가교' 상연

1993-10-24

제6회 '우토로 마을만들기 집회' 개최

후지카와 나츠코씨의 1인극 '우토로, 나의 생명' 상연

1994-07-25

미국 지원조직 NCR기사무국장이 우토로 방문

1994-08-25

주민대표, 사회당 우지시의원들과 시에 다시 한번 마을만들기 지원 요망

1994-08-30

화해교섭. 원고가 매각액 제시

1995-04-28

제2차 화해교섭 결렬

매매 가격 17억엔을 주민측이 거부

1995-08-01

주민회, 시에 수도 문제로 요청

1995-11-05

제8회 '우토로마을만들기 집회'에 약 80명 참가

한국 부산에서 극일운동시민연합의장이 방일, 교과서문제를 다룬 시민운동 등에 관해서 강연

1996-01-19

일본 사회당 해산

1996-02-27

서울시의원단과 시민운동단체대표가 우토로와 우지시청 방문

1996-05-26

'우토로집회' 개최. 아라이 에이이치씨 우토로에서 콘서트

1996-07-13

한국 가톨릭인권위원회가 우토로 방문, 필드워크

1996-09

제3차 화해교섭

1996-10-31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우토로 방문

1997-01-29

제3차 화해교섭. 14억엔 매입금액 제시

1997-03

교토지법에서 화해 최종 결렬

일괄매입 경우 양자가 주장하는 금액의 중간 금액으로 화해가 제시됨. 패소가 확정적인 상황에서 주민들은 매입 통한 해결 원했으나 실제로 토지 매입 자금력이 없어 화해가 성립되지 못함

1997-05-25

'우토로집회' 개최. 200명이 참가. 닛산차체까지 데모 행진

1997-09-18

주민이 수도 급수를 신청했지만 토지소유권 문제로 거부

1997-09-21

한국 국회와 외무부에 지원 요청

1997-10-26

제10회 '우토로마을만들기 집회' 개최

200명이 참가. 유엔인간거주회의에 참가한 해비타트 일본NGO포럼 사무국장 모리하라 히데키씨 참가

1997-11-15

'우토로농악대'가 우지시중학생 웅변대회에 출연

1998-01-30

교토지법 패소, 항소

1998-02-02

첫 판결 이후 주민 호소 활동

첫 판결을 받고 시청 앞에서 '우토로에서 살다' 전단지 배포와 우토로 입구에 입간판 '시민 여러분! 이웃의 목소리를 들어 주세요' 설치

1998-02-23

2차 10세대에 관해서도 동일한 판결

1998-02

한국 제15대 김대중 대통령 취임

1998-03-04

우지시에 대해 수도급수를 요구하는 처분명령 신청서를 교토지방재판소에 제출

1998-06-25

한국 인천 방송국이 취재차 방일

1998-07-17

11명에 대해서 판결, 부등기를 이유로 소유권 인정받지 못함

1998-08

일본정부가 유엔 사회권규약위원회에 2차 정부보고서 제출

1998-11-18

요시다씨 '시민의 당을 만드는 라투난 모임' 대표로서 우지시의원 선거에 출마

1998-12-22

오사카고법 첫 주민 패소 판결, 대법원에 상고

종래 주장에 강제퇴거는 원칙적으로 국제법에 위반된다는 국제법 추가 주장

1998-12-23

우토로를 지키는 ‘휴먼체인’ 퍼포먼스 대집회

인간띠잇기 항의 집회 150명 참가. 한복을 입고 장구와 꽹과리를 치면서 행진하며 토지문제 관련 반대시위

1999-01-28

31세대에 패소 판결

1999-05

우토로주민 워크숍 제1회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될 것인가”

1999-06-24

대법원, 첫 상고 기각 결정

1999-06-26

우토로주민집회에서 '우토로에서 살' 것을 확인

1999-06

<교토신문>, “정치적 해결이 필요한 우토로문제” 사설 게재

1999-07

<지키는 모임>, <우토로마치즈쿠리연구회> 조직. 조사 활동 개시

주택 밀집도, 노후화 비율, 주민 경제수준 등 정부가 정하는 주거환경정비사업의 실시 조건에 부합함을 조사하여 결론. 일본정부의 마을만들기사업을 활용한 문제해결 모색

1999-07-23

한국방송공사(KBS)가 취재하러 우토로와 우지시청 방문

1999-08-11

<지키는 모임>, 우지시에 진정

1999-10-19

<지키는 모임>, 교토부에 요망서 제출

교토부에 진정 활동, 지키는모임 요망서 전달 “부민의 이해를 얻을 수 있는 대응을 우지시와 함께 협의해간다”

1999-11

KBS 다큐멘터리 방영

2000-01-12

우지시의회 사회의원단이 예산 편성을 위한 요망으로 우토로 거주권 문제 언급

2000-02

주민들에게 우토로에서의 지속적 거주 의사 여부에 관한 개인 의사 확인

2000-03-13

한국 제2건국위원회 김상근 단장 방문

2000-05-02

한국흥인라이온스클럽이 KBS 방송을 보고 우토로 방문

2000-05-14

주민워크숍 제3회 마치즈쿠리 계획의 방향성 확인

2000-06

오사카고법 주민 전원 패소

2000-07-02

주민워크숍 제4회 마치즈쿠리 계획의 5개 기본방침 확인

1. 고령자, 장애인, 어린이를 생각하는 마을 2. 사람간의 만남을 소중히 하는 공동체 3. 안전하고 재해를 견딜 수 있는 마을 4. 규칙을 지키고 밝게 열린 마을 5. 장구소리가 들리는 마을

2000-08-12

<주민회>와 <지키는 모임>, “우토로마을, 어제 오늘 내일 - 콘서트와 농악의 만남”. 우토로 마치즈쿠리 계획 발표

약 400명 참가 '밀집주택시가지정비촉진사업' 적용을 꾀함. 김용교씨가 지휘하는 분당청소년오케스트라 방일, 공연

2000-09-26

무카이노의원이 우토로 문제로 질문

2000-10-01

코난대학의 나카이 교수를 초청해 국제인권규약을 중심으로 학습회

2000-10-15

'우지죠요쿠미야마 평화축제'에 사이토씨가 '라투난타임즈로 본 50년의 우토로' 전시로 참가

2000-10-26

<주민회>, 교토부에 마치즈쿠리 요망서 제출

2000-11-14

최고재판소 기각 결정

2000-12-11

차별엽서에 대한 긴급항의집회

2001-01-22

우지시의회 사회당의원단이 소취락개량사업과 마을 만들기 등의 예산 요망

2001-03

민간 컨설팅 회사가 “우토로 개발 플랜”을 주민들에게 제시

일본정부의 마을만들기사업 추진을 요구하는 “마치즈쿠리” 운동의 본격화

2001-06-02

가수 가와니시 안이 잔류고아의 곡과 우토로의 노래로 공연

2001-07-08

제2회 일본거주복지학회 주최 “우토로 집촌을 보고 주민과 이야기하다-강제퇴거 문제를 생각한다”

우토로 동포 약 200명 참가. 유엔 사회권규약위원회 아이베 리델 위원에게 우토로 문제 호소

2001-07-31~2001-08-09

리츠메이칸대학 국제평화뮤지엄에서 개최된 '2001 평화를 위한 교토 전쟁전'에서 지키는 모임이 라쿠난타임즈 기사를 소개

2001-08-12~2001-08-23

'유엔 사회규약위원회' 일본NGO의 일원으로 제네바 방문, 우토로의 실태를 위원회에 호소

2001-08-31

유엔 사회권규약위원회, 총괄소견에서 우토로 철거문제에 우려 표명

일본 정부의 국제적 약속 이행에 대해 유엔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위원회가 관찰한 결과를 정리한 문서로 주요 우려 사항, 제안과 권고 등의 내용

2001-09-04

제네바에서의 선전 활동의 성과를 우지시청에서 귀국보고

2001-11-07

우지시 의회 결산특별위원회, 우토로의 배수시설 현지 시찰

2001-11

'마을만들기 집회' 개최

2001-12-08

김순이무용단과 우토로 농악대가 '죠요시국가교류협회'에 의한 '국제문화교류회' 참가

2002-01

우토로 학생실, 교토부에 공개질문장 제출

2002-01-13

11월에 이어 '마을 만들기 집회' Part 2 개최

80명이 참가해 국가·정부·시에 보내는 편지 내용에 관해서 논의

2002-02-24

민단지부와 총련지부, 우지시에 대해 마치즈쿠리 위한 현지조사 요망 “우리들 살며 싸운다” 단결 집회, “어머니의 노래” 채택

유엔 사회권규약위원회 정부보고서 심사 후의 외무성과 NGO 의견교환회에 주민회 참가, 외무성 종합외교정책국 인권인도과와 면담

2002-03-22

민단과 총련 각각 교토본부, 우토로 현지 합동조사, 공동성명서 발표

'우토로 마을만들기 플랜' 실현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성명 발표

2002-03-26

우지시의회예산특별회에서 사회위원이 우토로 토지문제에 대한 행정 대응을 질문

2002-04

민단, 총련 지부 공동으로 우지시에 대해 현지조사 요망

우지시, 대체주택 건설을 전제로 하는 현지조사에 난색 표명

2002-04-21

시 식물공원에서 개최된 '스프링 플라워 콘서트'에서 우토로 농악대가 공연

2002-05-19

우지시직원노동조합 결성 50주년 기념 '가와세미 페스타'에서 우토로 농악대가 공연

2002-05

우지시와 쿠미야마쵸의 시민단체, 노동단체 등 대표 10명에 의한 '유사법제에 반대하는 벽명 피스 메시지 라쿠난모임' 설립

6월 11일에 '피스메세지·릴레이 토크'에서 우토로 언급

2002-06

일본시민들, <우토로문제를 알리는 모임> 결성

2002-06

NPO법인 교토코리안생활 센터 에루화 “데이서비스센터 하나마당 남교토” 개설

총련 미나미야마시로지부와 민단 미나미교토지부 유지가 바닥 난방 설치

2002-06

한일공동개최월드컵 개최

2002-07

<지키는 모임>, 1세들의 생활사 청취 조사 개시

2002-07

제1회 우토로전 개최

이후 2007년 9월까지 교토시, 우지시, 히로시마현 등에서 약 20회에 걸쳐 우토로전을 비롯한 강연회, 증업집회, 학습회 등 개최, 참가자 약 6,000명

2002-08-06~2002-08-08

'평화를 위한 나카우지 미니 전쟁전'에서 황순례씨가 우토로의 역사에 관해서 강연

2002-08-31

'이세다 여름 축제'에서 우토로 농악대가 오프닝 공연

2002-08

우지시가 14년도 당초예산에서 우토로 일수(溢水)대책비로 1천만엔을 계상

2002-11

다큐멘터리 영화 “우토로 가족의 마을” 상영

2002-11

우토로 농악대가 지역 문화제에서 공연

2002-11-25

우지시가 연도내 사업에서 우토로 일수대책을 위한 측량조사를 넣음

2002-12-05

우지시의회에서 무카이노 켄이치의원이 우토로 일수대책에 관해서 일반질문

2002-12-17

생활협동조합 엘코프 주최 '김치만들기 교실'에서 황순례씨와 한금풍씨가 교사로 참여

2003-01-18

이세다학구복지위 신년회에서 에루화 이용자 참가, 홍정자씨 장구 단독공연

2003-02-15

'전쟁유적에서 평화를 배우는 교토모임' 주최로 제32회 현장학습회로 우토로 견학

2003-02

우토로토지 채권자에게 정리회수기구가 새롭게 참여

2003-02

한국 제16대 노무현대통령 취임

2003-04-04

교토문교대에서 인권아워를 개최

엄명부씨가 '우토로와 자이니치의 역사'를 테마로 강연

2003-04

교토문교대 교수들이 발간한 <교토필드워크 추천- 걷다·보다·듣다·읽다>에 우토로에 관한 문장 게재

2003-04-08

우토로 토지에 새롭게 채권액 10억엔 저당 설정됨

2003-06

일본 시민모임 “우토로문제를 알리는 모임” 발족

2003-07-13

우토로쵸나이카이 주민집회에서 토지를 둘러싼 움직임을 보고

집회에는 필드워크에 참가한 재일조선인운동사 연구회 관서부회 120명 참가

2003-07-23

민단 미나미교토지부에서 민족무용 미니체험교실 개최

우토로여성에 의한 심화무용단의 김순이씨가 강사

2003-07-31

'피스사이클교토'(6월~8월)가 우토로지구 방문, 주민과 교류

2003-08-08

한국에서 '동북아대원정' 대학생 100명이 우토로 방문

2003-09-04~2003-09-05

공산당부위원회가 우토로에 대한 유엔 최종소견을 듣고 빠른 구제조치의 상세대책정리와 국가에 실태조사 실시를 요청

2003-09-13~2003-09-14

우토로문제를 알리는 모임, 제4회 '평화를 위한 니시우지 미니전쟁전'에서 우토로문제의 경과 소개

2003-09-17

우지시의회 9월 정례회의 일반질문에서 무카이노의원이 우토로 문제해결에 관해 통고

2003-10-22

'우토로는 지키는 학생청년실행위원회'가 200명 서명을 모아 교토부에 제출

2003-12-06

니시우지중학교에서 제2회 '오픈 페스타' 개최, 우토로 농악대가 특별공연

2003-12

이노우에 마사미, 토지 소유권 취득

토지 소유권을 둘러싼 원고 내부의 대립이 표면화되어 이노우에 마사미가 2,000만엔으로 법원에서 즉결화해라는 방법으로 소유권 취득

2004-01-25

우토로문제를 알리는 모임, 암네스티교토그룹과 공동주최로 하트피아 교토에서 다케다 토코카즈 작품 '우토로, 가족의 마을' 상영회와 토크이벤트 개최

2004-01-29

우토로 토지주가 서일본식산에서 한 개인으로

소유권 이전

2004-04-18

우토로에서 “다문화공생사회 실현을 향해” 집회 개최. <지키는 모임>, 고령자 실태조사를 제안

보고집회, 주민과 지원자 200명 참가. 히가시큐죠 '희망의 집'의 최충식씨가 '우토로 다문화공생사회를 향해' 강연

2004-05~2004-07

건물해체업자들의 빈번한 출입

2004-06-07

우지시 6월 정례회의에서 이케우치 미츠히로의원이 우토로 마을만들기에 관한 질문

2004-08-06

'하나마당 미나미교토' 2주년 기념 이벤트 개최

2004-08-08

강제철거에 대비한 우토로 지키기 긴급행동(약 500명)

2004-09-14~2004-09-19

한국 거주복지학회(문영기 회장)가 제4회 <한중일, 거주문제국제회의> 개최

한국의 주요신문이 우토로에서 사진과 함께 리포트로 소개. 친일파문제 등 역사청산‧검토분위기가 고양됨에 따라 크게 거론됨

2004-09-15

<주민회>와 <지키는 모임>, 춘천 “한중일거주문제국제회의”에서 우토로 문제 호소

주민과 지키는 모임 멤버 7명이 참가, 보고. 반향을 불러일으킴. 일본 시민단체 국내 최초 운동, 국내 언론의 사회면에 톱으로 기사화

2004-09-15

건물해체업자, 우토로에 빈번한 출몰

2004-09-22

'한중일주거문제국제회의'에 참가했던 주민과 지키는 모임 멤버가 귀국집회

2004-10-23

'우지교전면통행 문화페스타'에 우토로 '심화무용단'이 공연

2004-11-09

나종일 주일한국대사 우토로 방문, 교토부 지사에게 선처 요청

2004-11-14

'제10회 일본거주복지학회연구집회' 우토로에서 개최

100명이 넘는 주민, 지원자가 참가. 한국거주복지학회의 문영기 회장과 신상화총무이사가 강연

2004-11-17

정화태 오사카총영사가 우토로와 우지시청 방문, 시장에게 인권 관련 문제로써의 배려를 요청

2004-11-22

이준규 한국외교통상부 재외국민 영사국장이 방일 중에 우토로 방문

2004-12-04

이데쵸에서 개최된 '인권집회'에 '심화무용단' 출연, 엄명부씨 강연

2004-12-04~2004-12-18

우토로문제를 알리는 모임, '우토로 전쟁책임을 묻다'전을 개최

11일에 사이토씨가 '거주의 권리'에 관해서 강연

2004-12-04~2004-12-10

'교토인권계발 페스티벌 2004'

2004-12-27

우지시 12월 정례회의에서 이케우치 미츠히로의원(사회)이 우토로의 마을만들기에 관해 질문

2004-12

한일국장급협의에서 한국 측이 처음으로 우토로 문제를 다룸